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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 Marketing/Management

유리했던 협상이 말 한마디 잘못해 쩔쩔매는 협상으로 바뀐다 * IGM(세계경영연구원) 최철규 부원장·김한솔 연구원

[IGM과 함께하는 협상 스쿨]
틀어진 협상
계약 위반이라며 기세등등한 나다혈 상무 "소송 걸겠다"고 한 발 더 나갔다가…
사과하러 온 김토종 부사장, 벌떡 일어서며 "소송? 좋습니다. 한번 해봅시다"
'소송'이라는 단어, 동양권에서 잘못 쓰면 원수된다 / 문화의 차이
남을 평가 말고 팩트와 나의 느낌·의도를 말하라 / I-message
큰 것 하나 내주고 내가 원하는 걸 많이 얻어내라 / 판을 키워라

<사례>

"참으로 신뢰할 수 없는 분이군요. 이익을 위해서라면 신의는 헌신짝처럼 버려도 된다는 게 당신네 회사의 경영철학입니까?"

외 국계 할인점 '세일킹'의 나다혈 상무가 서툰 한국말로 소리를 버럭 지른다. 협상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던 '대박코리아'의 김토종 부사장. 어쩔 줄 몰라 하며 연방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재미교포 3세인 나다혈 상무(세일킹)가 화가 난 이유는 이렇다.

주방용품 제조업체인 대박코리아는 지난해 세일킹과 계약을 맺었다. 대박코리아의 히트상품인 '만능요리사'를 국내 1위 외국계 할인점 업체인 세일킹에 독점 공급하기로 한 것.

하지만 두 달 전부터, 만능요리사가 인터넷쇼핑몰인 '빽조아'에서도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박코리아가 독점 공급 계약을 어긴 셈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상무님. 저희 내부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사실 빽조아 인터넷쇼핑몰 사장이 저희 회장님의 조카입니다. 그쪽에서 하도 부탁을 해서 아주 소량만…."

식은땀을 흘리며 상황을 설명하는 김 부사장을 향해 나다혈 상무가 다시 호통친다.

"됐어요. 그런 구질구질한 변명이나 들으려는 게 아닙니다. 이건 엄연한 비즈니스입니다. 계약 위반 소송을 걸겠습니다."

나 다혈 상무는 이번 기회에 대박코리아의 '군기'를 확실히 잡겠다고 작정했다. 사실 세일킹의 CEO는 '이번 사건이 계약 위반이지만, 워낙 소량이고 만능요리사가 초대박 상품인 만큼 좋은 선에서 타협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나 상무는 생각이 달랐다. 앞으로 더 좋은 납품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 강하게 나가기로 한 것. 소송이란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김토종 부사장의 낯빛이 달라진다. 목소리는 차가워진다.

"소송? 좋습니다. 한번 해봅시다. 오늘 이 순간부터 세일킹과의 모든 거래를 끊겠습니다. 협상이고 뭐고 그만둡시다. 그만 가 보겠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갑자기 짐을 챙기기 시작하는 김 부사장.

김 부사장의 돌출 행동에 전세는 역전됐다.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나다혈 상무. '사장님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선 어떻게라도 김 부사장을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혀야 하는데….'

양측의 감정적 충돌이 극에 달한 상황. 더 이상의 협상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번 협상,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해답>

1. 같은 단어도 문화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앞의 사례에서 김토종 부사장은 '소송'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협상을 깨려 한다. 반면 재미교포 3세인 나 상무는 이런 김 부사장의 '돌발 행동'에 크게 당황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답은 상대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협상 테이블에선 똑같은 단어도 문화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동양 문화권에서 '누가 나에게 소송을 건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되는가? 한마디로 '갈 데까지 가보자'는 얘기. 정상적인 관계의 종말을 뜻한다. 우리 대(代)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자식 대(代)까지 갈등이 이어진다.

반 면 나 상무가 자란 미국에선 소송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소송을 하겠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이번 사안에 대해 자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단. 즉 강력한 의사 표현 방식의 하나이다. 미국에서 예컨대 100건의 소송이 접수됐다고 가정하자. 이 가운데 실제로 법정까지 가는 경우는 몇 건이나 될까? 채 5건이 되지 않는다. 나머지 95건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된다.

지 난 1976년 있었던 소니와 MCA(유니버설 영화사의 모기업)의 협상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당시 소니와 MCA는 비디오디스크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비디오디스크란 재생은 되지만 녹화 기능은 없는 원반 모양의 장치. 개발 협상이 한창이던 당시, MCA는 소니가 VCR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MCA의 쉐인버그 회장은 녹화 기능이 있는 VCR은 미국의 저작권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 소니의 모리타 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VCR 개발을 계속한다면 소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MCA의 쉐인버그 사장은 이런 '기습적 공격'을 통해 앞으로 VCR 개발도 함께하고, 협상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노림수를 쓴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소송'이라는 말에 화가 난 모리타 회장은 즉시 MCA와의 모든 비즈니스 관계를 중단했다. 결국 두 회사는 장장 11년이나 소송을 진행하며 수백만달러를 날렸다. 상대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낭비였다.

협상에서는 이처럼 협상 상대방의 '문화적 문맥(context)'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 협상에서 우리측이 상대 제안에 대해 'Hopefully yes'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치자. 이 말을 미국 사람들은 '아마 괜찮을 겁니다'라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인다. 반면 똑같은 말이, 영국 사람에겐 '거의 불가능한데….'라는 부정적 의미로 이해된다. 상대의 문화적 배경이 무엇이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셈이다.

2. 관계 살리려면 '아이 메시지(I-message)'를 써라.

협상가들이 화가 난 상태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바로 '유 메시지(You-message)'를 쓰는 것이다. 유 메시지란 뭔가?

말 그대로 너, 즉 상대의 '행동'이나 '정체성'에 대해 내가 평가를 내리는 대화법이다. "당신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그런 제안을 하다니, (당신은) 너무 비상식적이네요"

이 런 화법은 협상 테이블에선 피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지속적인 비즈니스 기회가 남아 있는 '관계 중심'의 협상에선 더욱 그렇다. 좋은 협상가는 상대를 평가하지 않고 그 제안에 대한 '나'의 느낌을 표현한다. 이것을 '아이 메시지(I-Message)' 화법이라 한다.

앞의 사례에서 나다혈 상무는 계약을 위반한 김 부사장에게 "(당신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유 메시지를 사용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안 볼 사람에겐 이렇게 말해도 된다. 하지만 앞으로 관계가 중요한 협상 상대에겐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내 행동의 배경(회장님의 지시)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상대가 나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면 기분이 좋겠는가? 관계를 잘 만들어 가야 할 협상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셈이다.

나 상무의 말을 아이 메시지로 바꿔보자. 아이 메시지는 대개 3단계로 이뤄진다. 우선 상대가 제안한 내용을 정리해서 말하는 '사실(Fact)', 다음은 이로 인해 내가 느끼는 '감정(Feeling)', 마지막은 이 말을 하는 나의 '의도(Intention)'이다.

"대박코리아가 독점 공급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이는 엄연한 계약 위반입니다.(사실) 이에 저희 회사 경영진은 실망과 분노를 느낍니다.(감정) 이 문제에 대한 대박코리아측의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듣고 싶습니다.(대화의 의도)"

어떤가? 상대의 감정을 '묘하게' 해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내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지 않은가?

일상의 예를 들어보자. 새벽 2시, 오늘도 남편이 전화 한 통 없이 술에 취해 들어왔다. 남편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

"지금 몇 시예요? 왜 연락도 안 해요? 당신은 참 배려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아마 당신과 남편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당신이 늦게 들어오니까(사실) 내가 걱정되고 불안하잖아요.(감정) 다음엔 꼭 미리 전화를 줘요.(의도)" 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이런 방식을 협상학에서는 '이슈와 인간관계를 분리하라'는 말로 표현한다. 협상테이블에서 협상 이슈에 대해선 거칠게 나가도 좋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한 기본적인 화법이 바로 아이 메시지다.

3. 다른 거래 조건들을 끌어들여 협상 판부터 키워라.

독점 공급 조항을 어겼기 때문에 갈등이 심각해진 상황. 이 협상을 윈윈(win-win) 협상으로 전환시킬 순 없을까?

서 로 양보할 수 없는 어젠다(agenda·의제)로 부딪힐 때에는 다른 어젠다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놔야 한다. 독점 공급이라는 하나의 파이에만 집착하지 말고 납품 가격, 물량, 대금 지불 조건 등 다른 거래 조건을 협상 대상으로 만들라는 뜻이다. 이를 협상학에선 '어젠다 확장 전략'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어젠다가 많아지면 서로 교환할 수 있는 가치들도 많아진다. 이때 나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상대방에게는 큰 가치를 줄 수 있는 조건을 제안할 수 있다. 이를 '으뜸 거래 조건'이라 말한다. 으뜸 거래 조건을 양보하고 대신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얻어낼 수 있다.

어젠다 확장 전략을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1984년에 있었던 중국 정부와 폴크스바겐의 협상. 당시 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중국 진출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요구하는 '기술 이전' 조건에 발목이 잡혀 중국 진출이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폴크스바겐은 중국 정부와 합작 기업을 설립하고 2000년대 초반 중국 승용차 시장의 반 이상(54%)을 점유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비결 은 뭘까? 폴크스바겐은 중국 정부가 요구하는 '기술 이전'을 해줬다. 그 대신 '중국 정부와 국영 기업의 폴크스바겐 승용차 우선 구입, 다른 외국 자동차 생산업체의 투자 제한, 해외 완성차 수입 시 높은 관세 부과'라는 3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이 요구만 수용되면 중국시장에선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폴크스바겐의 판단. 중국 정부로선 기술 이전만 된다면 나머지 요구를 들어줘도 큰 손해가 없었다. 결국 중국 정부와 폴크스바겐 모두가 만족한 협상 결과가 나왔다.

좋은 협상가는 항상 새로운 어젠다를 창조한다. 가능한 한 많은 어젠다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후 서로에게 중요한 가치를 주고받는다.

앞 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이렇게 하면 어떨까? 세일킹 은 대박코리아가 빽조아 쇼핑몰에 한해 한정된 물량만큼만 물건을 공급하도록 허락한다. 그 대신, 다른 히트 상품들에 대해 독점 판매권을 갖고, 납품 단가도 낮춰 달라고 요구한다. 이처럼 어젠다 확장 전략은 각자 덜 중요한 가치를 양보하고 더 중요한 가치를 얻어내, 결국 양측 모두가 협상결과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는 교환 방법이다.

좋은 협상가란 어떤 사람일까? 내가 원하는 협상 결과만을 얻어내는 사람? 아니다. 협상 결과는 물론이고 협상이 끝나고 난 후 상대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 관계를 해치지 않는 대화법, 협상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능력. 이 세 가지 '무기'만 장착해도 당신은 협상 테이블에서 불필요한 '인간관계의 훼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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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3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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